'선함'이 전제되어야 하는 ChatGPT와의 조우 -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술과 태도
2022년 11월 말, 미국의 한 AI 기업이 소리소문없이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당시 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심지어 출시 당사자들도 큰 기대를 품지 않았었죠. 하지만 이 서비스는 유저의 질문에 대해 자연스럽고 심층적인 산문 형태의 응답을 정교하게 생성하는 능력으로 빠르게 입소문이 났고, 출시 후 불과 5일 만에 1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OpenAI가 출시한 ‘Chat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드라마 같은 데뷔 스토리입니다. 호주의 저명한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가 ‘지금까지 등장했던 AI 시스템 중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시스템 중 하나’라고 표현한, IT 이슈의 한복판에 있는 ChatGPT는 유저들의 IT 환경과 기업들의 운명도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을까요?
OpenAI가 선보인 ChatGPT는 쉽게 말해 사람과, 그것도 아주 똑똑하고 말도 잘하는 인물과 의사소통하듯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서비스입니다. 어려운 질문을 던져도 찰떡같은 답변을 척척 내놓습니다.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이라고도 하는 이 서비스는 대중의 피드백을 통해 언어 모델의 결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죠. ‘인간 피드백을 통한 강화학습(RLHF, 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이라는 기술이 적용되어 계속 똑똑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AI 자비스나 프라이데이가 떠오르지 않나요?
모든 IT 서비스가 그렇듯 ChatGPT도 다양한 버전들이 존재했습니다. 첫 번째 버전 GPT-1은 2018년 6월에 등장했습니다. 아주 간단한 대화만 가능한 수준이었죠. 약 1년 후에는 연구용으로 활용할 가치는 있지만 답변의 정확도가 심히 떨어지는 GPT-2를 선보입니다. 삼성의 빅스비나 애플의 시리가 갖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2020년 6월 출시한 GPT-3는 확 달라진 모습을 뽐냈습니다. GPT-2 당시 15억 개였던 매개변수(언어모델이 학습 중 신경망에서 조정되는 값으로 많을수록 AI의 성능이 좋아짐)가 GPT-3에서는 1750억 개로 증가했으니 100배 이상 스마트해진 셈입니다. 그리고 이 세 번째 버전을 다듬은 3.5버전이 2022년 정식 출시된 서비스입니다. 올해 3월에는 GPT-4가 공개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향상된 성능과 별개로 가장 눈에 띄는 기술은 바로 ‘멀티 모달 인터페이스(Multi-Modal Interface)’로, 글자뿐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까지 인식하며 해당 콘텐츠의 숨은 뜻까지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출시될 GPT-5에서는 비디오 입출력 기능이 강화된다고 하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ChatGPT는 탁월한 성능으로,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줄을 서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3월 오픈AI가 ChatGPT의 API를 공개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서비스에 ChatGPT를 적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ChatGPT 기술을 활용한 앱이 벌써 100개 이상이며, 국내에서도 해당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원티드랩(채용 플랫폼) 채용 면접 관련 답변 제공하는 ‘인공지능 면접 코칭 서비스’ 출시
• 마이리얼트립(여행 플랫폼) 대화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여행플래너’ 서비스 출시
• 겟차(신차 구매 플랫폼) ChatGPT를 도입한 차량 추천 AI 서비스 출시
• 김캐디(골프 생활 플랫폼) 골프 전문 챗봇 ‘AI 김캐디’ 베타 서비스 오픈
• 삼쩜삼(세금 신고 및 환급 도움 서비스) 세금 챗봇 ‘AI 점삼이’ 베타 버전 공개
• 굿닥(헬스케어 플랫폼) ChatGPT 기반 ‘건강 AI 챗봇’ 서비스 출시
• 팀스파르타(소프트웨어 교육 스타트업) 온라인 코딩 강의 ‘스파르타코딩클럽’ 즉문즉답 서비스에 ChatGPT 도입
• 엘리스(AI 기반 디지털 교육 기업) ChatGPT 기반으로 코딩 학습을 돕는 ‘AI 헬피’ 출시
• SK텔레콤 2022년 5월 출시한 AI 비서 ‘에이닷(A.)’에 ChatGPT 접목
이처럼 ChatGPT의 활용폭은 상당히 넓습니다. 기업들은 주로 고객들이 자주 문의하는 질문에 대한 자동 응답을 제공할 수 있는 고객 서비스나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제품 및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에 활용합니다. 교육용 도구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직관적으로 챗봇 이나 가상 비서로 이용하기도 하죠. 그런가 하면 업무 효율과 실적 향상을 위해 ChatGPT를 접목하려는 기업도 있습니다. 종합 건설기업 DL이앤씨에서는 ChatGPT를 통한 보도자료 작성을 테스트해 보고 있는데, ChatGPT가 작성한 보도자료가 직원이 작성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요. AI 쓴 글로 가득한 세상이 곧 찾아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미 브랜드화된 ChatGPT는 앞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활용될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서비스와 결합해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일 수도 있고, 이를 통해 특정 산업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ChatGPT 오남용의 위험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일부 대학생들이 ChatGPT를 통해 시험 과제를 작성하는 등 부정행위를 자행한 바 있죠. 또 ChatGPT를 사용하면 피싱 메일이나 악성 프로그램도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며, 교묘한 질문을 통해 범죄에 악용할 수 있는 정보를 캐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업의 기밀 유출이나 가짜 뉴스 생산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유저가 ChatGPT에게 마약과 관련된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졌는데요. ChatGPT는 부적절하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흠칫하게 되는 지점은, ‘모른다’가 아니라 ‘(알고 있지만)알려줄 수 없다’는 것인데요. 누군가 고도의 기술로 ChatGPT를 해킹해 이러한 정보들을 빼내거나 범죄 집단에 판매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온갖 불법 정보가 가득한 다크 웹을 학습해 알려주는 ChatGPT는 그 무엇보다 무서울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들 역시 ChatGPT로 할 수 있는 것에만 혈안 되지 않고, 하면 안 되는 것에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도덕성을 잊은 기업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이기심으로 해당 시장 전체를 망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ChatGPT는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기술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최근 ‘Be My Eyes’라는 덴마크의 스타트업은 이미지 입출력 기능이 강화된 GPT-4를 활용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연구, 개발 중인데요. 스마트폰의 카메라와 ChatGPT가 결합해 눈을 대신해 주는 서비스로,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 속 사물이나 거리 등을 인식해 소리로 알려주는 것이죠. 이처럼 기술이란 개인과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활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오픈AI의 목표인 ‘인류에게 선한 영향력과 이익을 주는 것’에 ChatGPT를 활용하는 수많은 기업들도 모두 동조하고 함께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장윤성
매거진 <B> 시니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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