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빠져드는 3.0의 시대
몇 년 전부터 ‘웹 3.0’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웹 3.0에 대해 혹자는 그간의 웹 생태계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여기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실체 없는 허상’일 뿐이라고 날 선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도대체 웹 3.0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상반된 의견이 공존하는 것일까요?
웹 3.0은 ‘시맨틱 웹(Semantic Web)’과 ‘탈중앙화된 웹’,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형태의 웹 생태계입니다. 시맨틱 웹은 1998년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제안한 개념으로 ‘의미론적인 웹’을 뜻합니다. 기계가 인간들의 자연어를 이해해 사용자의 상황과 맥락에 부합하는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웹을 가리키죠. 웹 3.0 단계에서는 기존과 달리 중앙관리자가 존재하지 않는 블록체인 시스템을 통한 탈중앙화가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각 개인이 직접 데이터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중앙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DApp(탈중앙 애플리케이션), DID(탈중앙 신원증명), Defi(탈중앙 금융) 등 다양한 탈중앙화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단순히 3차원 공간이던 메타버스는 웹 3.0 단계에서 가상과 현실이 융합한 신개념 디지털 세계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VR과 AR 등의 기술을 통해 현실의 경계와 의미를 확장한 경험을 제공하고, 고유의 디지털 자산 소유권 증명이 가능한 NFT까지 등장하며 단순한 엔터테이닝을 넘어 새로운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메타버스의 사회적 관심도와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커지고 있죠.
웹 3.0 이전, 웹 1.0 시대는 1991년 월드 와이드 웹(www)이 공개되고 2004년까지 이어진 단계로 단방향 정보 제공만 가능했습니다. 클릭과 스크롤 이외에 다른 상호작용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읽기만 가능한 웹페이지들뿐이었습니다. 이후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스마트폰의 등장 등으로 인해 웹은 급속하게 발달했고, 수동적이었던 사용자들은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등 웹 생태계 안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환경이 바로 웹 2.0입니다. 하지만 무수한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해 활용하는 거대 기업이 등장했고, 이 때문에 정보의 중앙집중화가 일어난 것도 사실이죠. 결국 현재까지 웹은 단방향 소통(1.0) -> 양방향 소통 및 중앙집중화(2.0) -> 시맨틱 웹, 탈중앙화, 메타버스(3.0) 순서로 진화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브랜드를 바라보고 즐기는 사회적 인식의 성숙도 흐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나눠 보자면, 브랜드 1.0 시대에는 브랜드라는 개념 자체가 정착하지 못한 시기였죠. 종합적 이미지와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브랜드가 아닌, 그저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메이커’의 시대였습니다. 이후 찾아온 2.0 시대는 웹 2.0과도 흡사한 대형 브랜드의 시대입니다. 좋은 품질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나 소비자들의 세세한 취향까지는 반영하지는 못하는 것이 대형 브랜드입니다. 소비자들은 품질 측면에서 더 나은 대안이 없으니 호불호를 떠나 대형 브랜드의 프로덕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3.0 단계에서는 소비자들의 개성과 니즈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화, 구체화되었고, 이를 세세하게 충족시키는 작고 희귀한 독립 브랜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내 취향에 딱 맞는 브랜드’, ‘나만 알고 싶은 브랜드’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처럼 브랜드의 사회는 단순 메이커(1.0) -> 대형 브랜드(2.0) -> 취향 맞춤 스몰 브랜드(3.0)의 흐름으로 진화한다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2.0과 3.0이 공존하는 시대로 볼 수 있고요. 이 역시도 웹 생태계의 현재 발전 단계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웹 3.0 환경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비중이 어떻든 웹 3.0의 장점을 적용한 서비스는 이미 사용자들 바로 곁에 있습니다. 사용자 언어의 맥락을 파악하고 번역을 해주는 서비스나 많은 이들이 투자를 경험한 암호화폐와 NFT,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 등이 그것이죠. 그런데 많은 사용자들이 눈앞에 보이는 최종 현상에만 주목합니다. 그 이면에 웹 3.0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기술이 적용되었는데 말이죠. 웹 3.0 시대에 적응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들을 더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브랜드에 대해 알아가듯 숨겨진 기술에 주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시맨틱 웹, 탈중앙화, 메타버스 모두 개념적으로는 순수하게 과거 환경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에 동조하고 공감하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에 애정을 갖는 것은 무리일 수 있지만, 이를 관심을 갖고 지지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할 테니 말이죠. 결국 웹 3.0 생태계 역시 아는 만큼 더 빠져들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최초의 의도와 방향성이 좋다고 무조건, 영원히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959년 스웨덴의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Sten Gustaf Thulin)이 개발한 비닐봉투는 종이봉투의 약한 내구성 보완은 물론 종이봉투를 만들기 위해 베어야 하는 수많은 나무를 지키기 위한 순수한 의도로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었지만 말이죠. 본격적인 웹 3.0 시대에도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와 기업 모두 성숙해진 시대입니다.
브랜드에 문제점이 생기면 기업과 소비자들이 과거에 비해 더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함께 해결해 가는 것처럼, 웹 생태계 안에서도 모두의 올바른 자정작용이 일어날 것으로 믿습니다.
매거진 <B> 시니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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