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로그

인류를 위한 혁신의 길, K-기술 -선점과 선도, 평준화의 여정-

기타 / DX
2024.02.16
현재 우리나라는 2030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해 중앙정부부터 민간과 공공부문에 이르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부산이 내세운 엑스포의 대주제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입니다. 이는 기후 변화, 테러, 양극화 등 인류가 직면한 여러 위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겠다는 부산, 나아가 대한민국의 의지에 대한 천명인 것이죠. 부산은 엑스포 개최를 통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플랫폼의 역할을 할 것이고, 이를 위해 다양한 기술 집약적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부산 엑스포에 대한 일련의 계획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가 가진 자국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방안은 대부분 첨단 기술을 활용한 것들일 테니까요. 또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자신감에 근거가 되어주는 LG, 삼성, SK, 현대차그룹 등 기술 중심 글로벌 기업들이 든든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해외 국가들에게도 그 가치를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것이겠죠. 가수 싸이와 BTS로 대표되는 한류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 의미와 존재감만큼은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앞선 기술들은 해외의 누군가에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일 수 있습니다.

‘나만의 것’에서 ‘모두의 것’으로 

기술의 발전 과정은 대략 선점, 선도, 평준화의 길을 걷습니다. 한 기업이 혁신적 기술을 선보입니다. 물론 이 기술은 완벽히 새로운 것일 수도, 존재하던 기술들을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조합한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였다면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기업은 곧 해당 시장을 선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기업이 후발주자로서 비슷한 기술과 이를 적용한 제품을 선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기술 수준은 평준화되고, 혁신이었던 기술은 일상적 기술로 자리매김합니다. 이후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요.

애플은 이러한 기술의 발전 과정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브랜드입니다. 2009년 애플이 아이폰 3GS를 선보였던 때를 떠올려 보죠. 현재의 기준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수준의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우리에게 스마트폰의 시대를 열어준 획기적 기술이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른 기업들을 ‘카피캣’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구글은 아이폰의 운영체제인 iOS에 대항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시스템을 개발했고, 수많은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이를 이용해 스마트폰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폰에 비하면 아주 조악했던 안드로이드폰의 만듦새와 최적화 수준도 이제는 상당히 좋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단 아이폰뿐 아니라 아이패드, 애플워치, 에어팟도 출시 이후 비슷한 발전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속에서도 혁신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기술 문법을 따르되 새로운 발상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LG전자가 선보였던 롤러블 TV나 삼성전자의 접는 스마트폰 갤럭시 Z 폴드와 플립을 좋은 예로 볼 수 있죠. 어쩌면 선점과 선도, 평준화까지 이어져 모두가 ‘더 이상의 혁신은 어렵다’고 생각할 때도 우리나라 기업만은 새로운 혁신의 길을 모색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K-기술 약진의 현장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기존 기술을 응용, 변형하는 데에만 능한 것은 아닙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도 과거부터 꾸준히 선보여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중교통과 교통카드 시스템은 자타공인 늘 최고의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특히 카드 한 장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할 수 있는 시스템은 해외 관광객들에겐 놀라움이기도 했죠. 2011년 LG CNS는 이러한 우리나라의 첨단 교통 IT 인프라를 수출한 바 있습니다. 당시 LG CNS는 남미 3대 도시 중 하나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AFC(대중교통 요금자동징수) 및 BMS(버스운행관리시스템) 구축, 운영 사업자로 선정되었죠. 총사업 규모는 약 3억 달러로, 당시로서는 국내 IT 서비스 분야 해외 수출사에 전례 없는 초대형 사업이었습니다. 독자적 기술을 통해 국위선양은 물론 수익 측면에서도 성공한 케이스였습니다.

조선 사업 분야에서도 한국 기술의 약진은 눈에 띕니다. 지난 9월 5일부터 8일까지 개최된 세계 최대 친환경 선박ᆞ에너지 전시회 ‘가스텍 2023’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다수의 국제 인증기관으로부터 기술을 인증받고, 여러 글로벌 기업들과 MOU를 성사시키며 짧은 시간동안 최적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HD현대는 글로벌 선급 및 기업들과 총 16건에 달하는 기술인증 획득 및 기술협력 MOU 체결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차세대 친환경 선박으로 꼽히는 암모니아 및 수소 선박의 진일보된 기술력을 공개해 큰 주목을 받았죠. 친환경 오션 솔루션을 대거 선보인 한화오션과 기존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해양플랜트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한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 모델 등을 내세운 삼성중공업 역시 유의미한 성과를 이뤘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는 기업의 이윤이 아닌 인류의 삶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은 온실가스의 기후 변화 기여도를 나타내는 지구온난화지수(Global Warming Potential, GWP)를 정확히 산출할 수 있는 정밀측정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통한 복사효율 측정 절차를 국가표준 기반으로 정립해 세계적으로 통용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 제안했습니다. 이는 친환경 대체가스 개발에서 국내 산업계가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인류를 위한 진정성 담은 혁신의 필요성 

기술의 혁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을 어떻게 이롭게 하는지에 따라 그 유용함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혁신을 이루었어도 인류의 삶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때문에 우리나라의 기업들 역시 단순히 혁신을 위한 혁신에 집착하면 안 될 것입니다. 누군가를 이롭게 할 요량으로, 특정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로 순수하게 접근을 시작한다면 진정성을 담은 혁신이 이루어질 거라 믿습니다. 혁신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창함이나 화려함도 필요 없습니다.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소박한 아이디어가 작지만 꼭 필요한 혁신이 될 수 있고, 이것이 인류를 위한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이 아닌 작은 스타트업에서도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술 분야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부터 세계적인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주변의 작은 것을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성장시켜 글로벌한 보편성을 띄게 만드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혁신의 길이 아닐까요?



장윤성
매거진 <B> 시니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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